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온 현충일, 어김없는 기념일이다.
모처럼 여행 계획을 세운 우리는 양양행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기사 아저씨는 대뜸 고속도로가 막히니 국도로 달리겠노라고 선언했다.
융통성을 발휘하는 모습에, 저것이야말로 프로정신이라며 그만 들뜨고 말았다.
그 프로정신과는 별개로 양양까지는 4시간 30분가량이 걸렸지만.
아무튼 양양에서 버스를 갈아타는 번거로움 끝에 낙산해수욕장에 도착했다.
아직 6월 초라 그런지 한산했다.
한산한 정도가 아니라 을씨년스러울 정도였다.
게다가 흡사 11월 초를 방불케하는 강풍이 불고 있었다.
우리는 당황했다.
오후 두 시에 턱뼈가 덜덜거릴 만치 추운 건 무슨 일인가.
그래도 더운 것보다는 낫다고 자기최면을 걸었다. 효과가 있었다.
원래는 적당한 선에서 자제할 줄 아는 성품을 갖추었으나
사람이 워낙 없어서 모래에 이런 걸 끄적이면서도 하나도 부끄럽지 않았다.
심지어 깔끔하게 잘 썼다.
나는 내심 기뻤다.
그녀도 기쁜 모양이었다. 기쁨의 춤을 추기 시작했다.
Dance of Joy★
하지만 춥고 공허한 바다에서는 막상 할 게 없었다.
잠시 거닐다가 카페에 들어가 몸을 녹이기로 했다.
그렇다고 카페에서 뭔가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우리는 늘 이런 식이다.
카페라떼와 고구마라떼를 홀짝이며 시간을 보냈다.
여행객답지 않게 시간을 정말이지 느긋하게 썼다. 동네 마실 나온 것처럼.
바다는 왜 바다인가 : 다 받아주니까.
산은 왜 산인가 : 거기서 사니까.
뭐 이런 시시껄렁한 말장난도 했다.
그런데 이러한 말장난이 슈퍼마켓 아주머니의 명언을 위한 복선일 줄이야.
이 고기 어때요? : 이그, 고기 맛이 고기서 고기지.
아무 의미도 없는, 발등에 조개 올리고 사진 찍는 놀이를 하면서도
의외로 몰두하는 있음을 깨닫고 새삼 놀라버렸다.
누가 그랬던가. 여행이란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시간이라고.
…나의 새로운 모습은 어쩌면 좀 실망스러운 것일 수도 있겠다.
뭐 그밖에도 화장실 건물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등
각종 신나는 이벤트가 이어졌지만 굳이 상술하지는 않으련다.
참석자 프리미엄.
아. 낙산사는 생각보다 넓더라.
돌아오는 버스에서도 기사 아저씨는 국도로 달리겠다고 했다.
(이, 이건, 기사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국도병?)
결국 주말의 9시간을 도로에서 보냈다는 이야기.
그래도 기념일은 기념일이지.
그리고 추억은 추억이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