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투] 01. 경희궁공원




악몽 같은 더위였다.
더위 같은 악몽이었다는 말에도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을 만한 무더위였다.
허나
세월은 흐르는 물과 같으니 그저 앉아서 놀 순 없지 않겠느냐
고 외치며 우리는 강행군을 결심했다.
(기껏 한 결심이 나가서 노는 계획이라는 게 좀 에러)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시작한 공원투어, 그 첫 번째 일정은 경희궁공원.
왕왕 오던 경희궁이지만 공원인 줄은 까맣게 몰랐다.






경희궁 앞에는
프라다 트랜스포머 프로젝트를 위한 회전형 가건물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데
철수할 때 시멘트 뒤처리를 어떻게 할지 눈에 쌍심지를 켜고 주시하는 사람이 있으니
부디 유종의 미를 거두기 바라고

우리는 헐떡이며 프라다도 경희궁도 제쳐두고 일단 샛길 돌파 감행.






실은 공원투어랍시고 모처럼 나왔건만
야속할 정도로 아무 것도 없어 간절한 마음으로 구석구석 둘러보던 중
경희궁 왼편에 느닷없이 등장한 길인데
보스 스테이지에 이르는 듯한 핫라인스러운 굴곡에 잠시 멈칫했으나

선선한 바람이 부는 그늘진 길을 도저히 벗어날 수가 없었던 얄팍한 속사정,
볕을 쬐느니 언덕을 타겠다는 결연한 의지로 발을 내딛었다.






그렇게 길을 따라 끝까지 올라가니 경희궁의 배후가 드러났다.
목적불명의 공터와 주민 체육시설(이라기엔 초라한 평행봉)이 그것.

서울시 한복판에 꽁꽁 숨겨둔 비원치고는 볼품없었다.
할머니가 숨겨둔 사탕을 훔쳐먹었더니 계피맛이었던 것과 비슷한 뉘앙스랄까….






잠깐. 이렇게 겉돌기만 할 순 없어. 변죽만 울리다니 안 될 일이지.
이름도 경희궁공원이잖아. 경희궁에는 아마 더 굉장한 게 있을 거야.

노파심에 덧붙이자면 그렇게까지 기대하진 않았다.






돌계단을 내려오다 정체모를 시설물을 발견하는 등 흥미진진한 일들을 겪으며
마침내 다다른 경희궁지. 쥐도 고양이를 문다는 그 궁지.

행여나 물리지 않을까 긴장에 사로잡혀
경건하게, 입장.






경희궁이 서울 시내의 다른 궁들과 확연히 구분되는 특징이 있다면
그건 바로 무료라는 것.

누구나 방문할 수 있도록 개방되었지만 웬일인지 한산하다.
이건 내 생각인데
입장료를 받기 시작하면 관람객이 증가하지 않을까 싶다.
비싸야 명품 대우를 해주더라고.






덕분에 우리만 신났지 뭐.

말이 나와서 말인데,
광화문에 광장이 생긴 후로 인파가 어마어마하게 몰려서 나는 불쾌하다.
청계천과 시청 광장 때에도 한 차례씩 출렁이더니,
원체 붐비는 곳을 더 붐비게 만들었다.

이하는 안타까움을 노래한 시.

광화문 네거리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놀던 광화문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물 튀는 분수대 소리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그래도 광화문 비둘기는
하느님의 광장 같은 새파란 아침 하늘에
광화문 방문객에게 축복의 메시지나 전하듯
광화문 네거리를 한 바퀴 휙 돈다.

<후략>






제1회 공원투어는 이것으로 끝.
나름의 수확을 거둔 데뷔였다는 자평과 함께 여기서 이만.








다음 공원투어는 어딜 가도 쾌적할 듯
Posted by lulunou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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